시노다 도코를 추억하며

기고자: 기후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미야자키 가오리

도코 시노다의 캘리그래피로 'Morinosei'라는 일본어 문구가 새겨져 있음. 옅은 회색 양피지 위에 일본어 글자가 검은색과 회색으로 적혀 있음.

도코 시노다의 캘리그래피로 'Morinosei'라는 일본어 문구가 새겨져 있음. 옅은 회색 양피지 위에 일본어 글자가 검은색과 회색으로 적혀 있음.

도코 시노다의 캘리그래피로 'Morinosei'라는 일본어 문구가 새겨져 있음. 옅은 회색 양피지 위에 일본어 글자가 검은색과 회색으로 적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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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시노다의 작품을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구독하던 잡지에 실려 있던 것은 아름다울 미(美)를 주제로 한 서예 작품이었다. 아직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주던 깊은 감동이 생생히 떠오른다. 미(美)는 힘 있으면서도 우아하게 느껴졌다. 시노다 본인을 형상화한 것일까? 아니면 먹과 구도 뒤에 있는 어떠한 보편적인 미(美)를 나타내는 것일까?
 
시노다 도코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일본 전통 문학과 서예를 익혔다. 20대 초반에는 독립해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노다는 뛰어난 실력의 히라가나(일본 문자 체계 중 하나) 서예를 자랑하는 여성 서예가로서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표현에 대한 열망을 추구_할_ 수록 특정 형태를 따라야 하는 한자의 특성이 한계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내 천(川)을 쓴다고 합시다. 이 글자는 세로획 3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개나 7개를 그어서는 안 되죠. 하지만 번번이 5개나 13개를 긋게 되는 거예요. 저는 수없이 많은 획을 긋고 싶고 원래의 세로획뿐만 아니라 가로획과 대각선의 획도 더하고 싶었어요. 이러한 본질적인 욕구를 억눌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Sumiiro(1978)
 
1940년대 후반이 되자 시노다는 서예에서 벗어나 수묵을 이용한 독창적인 추상화 작업을 주로 하며 서예와 회화의 영역을 뛰어넘은 예술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런 와중에도 한자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아 서예 작업도 병행했다. 특히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는 책 표지, 제본, 제품 라벨, 신문 칼럼, TV 프로그램 제목, 시설 로고 등 다양한 서예 작품을 선보였다.
 
1969년, 시노다는 가네보의 두 향수인 Hinotori와 Morinosei 패키지 디자인을 통해 예술적인 기교를 선보였다. 불 화(火)의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획에는 여인의 우아함과 단호함이 드러나 있다. 반면 Morinosei는 대조적인 톤으로 획을 겹쳐 씀으로써 여인의 청아한 목소리가 고대 숲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버블 경제 시기와 맞물려 제품이 출시될 무렵에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와 여성 해방 운동은 물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이어졌다. 시노다는 자신이 그린 불 화(火)처럼 신념을 열정적으로 추구했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전시를 열고 건축, 석판화, 수필과 같은 새로운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하면서 당시의 트렌드와 운동에 기여했다. 1970년대에는 작품을 통해 내면의 성찰로 탄생한 새롭고 섬세한 미학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Morinosei 작업에 구현한 신성한 침묵처럼 시노다의 영적인 내면세계를 반영하는 듯한 작품들이었다.
 
1980년대 이후, 시노다의 작품 세계의 핵심은 관습적이고 정형화된 구조를 탈피한 암호와 같은 획과 깊은 여백의 미가 대조를 이루면서도 어우러지는 형태로 확장됐다. 한자의 의미와 기능은 해체되어 추상적인 형태로 구성된다. 시노다의 작품은 서예를 초월한 새로운 형태로 발전했지만, 한자 그 자체는 여전히 영감의 원천이었다. 시노다는 무한한 열정과 창의력으로, 아름다울 미(美)에 담겨 있던 것처럼 힘 있고 우아한 획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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